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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쓰기 싫은 날, 촘촘한 배수구 거름망을 써 봤어요

불 쓰기 싫은 날은 싱크대가 덜 어질러질 것 같죠?! 그런데 웬걸요.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고 전자레인지에 돌릴 것만 돌려 차렸는데도 접시는 식구 수대로 나오고, 과일 씻은 볼까지 한쪽에 얌전히 줄을 서 있더라고요. 삼남매가 있는 집에서는 불을 안 쓰는 것과 설거지가 없는 것이 전혀 다른 이야기예요.

얼마 전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배수구에 씌우는 촘촘한 거름망을 한 묶음 사 왔어요. 원래 쓰던 배수구 바구니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밥알이나 자잘한 찌꺼기가 틈으로 빠져나가는 걸 볼 때마다 영 찜찜했거든요. 거창한 살림 장비도 아니고 그냥 얇은 망인데, 막상 끼워 보니 바구니 안쪽에 착 붙어서 첫인상은 꽤 단정했답니다.

그날 식탁에는 차갑게 두었던 반찬을 꺼내고 포도도 씻어 올렸어요. 막내는 포도를 촵촵 먹다가 오늘은 부엌이 안 더워서 좋다고 했고요. 정작 저는 싱크대 앞에서 물을 틀고 있었지만, 가스 불 앞에 서서 냄비를 지키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어요. 불을 덜 쓴 날에도 설거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조금 억울했지만요.

접시를 헹굴 때마다 거름망 안으로 작은 찌꺼기가 모이는 게 눈에 바로 보여요. 배수구 바구니 바닥에 들러붙은 밥알을 손으로 떼어 내던 일이 줄었고, 설거지가 끝난 뒤 망 가장자리를 잡아 올리면 한 번에 정리가 되니 손이 덜 머뭇거려요. 물도 처음에는 졸졸 잘 빠져서, 이런 얇은 물건 하나가 왜 이제야 눈에 들어왔나 싶었답니다.

배수구가 막힌 저녁#

그렇다고 계속 산뜻하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며칠 뒤 저녁, 설거지물이 갑자기 빠지지 않고 싱크대에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저는 배수관부터 떠올려 괜히 마음이 급해졌고, 옆에서 빈 그릇을 가져오던 아이들도 물이 왜 그대로 있느냐며 한마디씩 보태니 부엌이 금세 소란스러워졌죠.

배수구 바구니를 들어 보니 원인은 거름망이었어요. 자잘한 찌꺼기를 잘 잡는 만큼 기름기와 음식물이 겹쳐 붙으면 물길도 빠르게 답답해지더라고요. 새것처럼 보인다고 하루 더 쓰려 했던 제 욕심까지 더해진 셈이에요. 망을 걷어 내고 바구니를 씻으니 고여 있던 물이 사르르 내려가는데, 안도하면서도 조금 민망했답니다.

그 뒤로는 설거지 중 물 빠지는 소리가 둔해지면 바로 망 상태를 봐요. 촘촘해서 마음에 든 부분이 그대로 아쉬운 점이 되기도 했어요. 국물이나 양념이 많이 남은 그릇을 한꺼번에 헹군 날에는 생각보다 금방 젖고 무거워져서, 가장자리를 잡아 올릴 때 물방울이 바닥에 톡톡 떨어지기도 하고요. 봉투에서 새 망을 자주 꺼내는 것도 쓰레기를 늘리는 기분이라 마냥 가볍지는 않아요.

그래도 한여름에는 배수구 바구니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 줄었다는 쪽에 마음이 기울어요. 남은 음식은 먼저 털고, 망이 꽉 차기 전에 바꾸는 정도로 쓰니 이번에는 물이 다시 차오르지 않았어요. 손잡이가 달린 도구처럼 씻어서 보관할 것도 없어서, 저녁 설거지를 끝낸 뒤 싱크대 주변을 닦는 흐름이 조금 짧아졌고요.

어제도 불 대신 전자레인지에 맡긴 저녁이었어요. 다 먹은 접시를 가져다 놓으며 오늘은 배수구 괜찮냐는 말이 먼저 나왔는데, 한 번의 소동이 가족 모두에게 꽤 선명했던 모양이에요. 저는 물이 잘 내려가는지 슬쩍 확인하고 젖은 행주를 헹궜어요. 창밖에서는 매미 소리가 여전하고, 싱크대에는 씻어 둔 포도 몇 알이 작은 그릇에 남아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