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말 숙제는 장보기보다 냉장고 문 먼저 열기였어요. 다음 한 주 끼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서 늘 메모장부터 켰는데, 이번에는 식비가 유난히 묵직하게 느껴졌거든요. 장바구니에 뭘 더 담을지만 생각하다 보면 집에 있는 건 자꾸 뒤로 밀리더라고요.
토요일 아침에 냉장실 서랍을 몽땅 꺼내 식탁에 올렸어요. 반쪽 남은 양배추는 멀쩡했고, 감자는 서로 기대어 싹이 날 듯 말 듯 버티는 중. 냉동실 안쪽에서는 언제 넣었는지 기억도 흐릿한 만두 한 봉지가 나왔어요. 제가 사 놓고도 발견할 때마다 꼭 선물 받은 기분인 건 좀 이상하죠?!
평소 같으면 다음 주에 먹을 메뉴를 먼저 적고 거기에 맞춰 장을 봤을 텐데, 이번에는 순서를 살짝 바꿨어요. 나온 것들로 만들 수 있는 저녁을 먼저 정하고 정말 비어 있는 것만 메모했답니다. 양배추는 볶음밥 쪽으로, 감자는 국에 퐁당. 만두는 일요일 점심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세 아이가 있는 집이라 조금 남은 재료가 한 끼를 온전히 책임지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반찬 하나의 시작은 되더라고요. 냉장고 속 것을 먼저 정해 두니 마트에서 ‘이것도 있으면 좋겠는데’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한 번 멈추게 됐어요. 카트가 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담고 다시 빼는 일이 확실히 줄었답니다.
계산하기 전에는 결제 행사 안내도 한 번 더 봤어요.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에서 엘페이 적립 실적을 기준으로 추가 적립을 안내한 8월 엘페이 적립 행사가 있더라고요. 다만 혜택만 보고 필요 없는 걸 더 담으면 순서를 바꾼 의미가 없으니, 적어 온 목록 안에서 결제할 때만 챙기기로 했답니다.
돌아오자마자 옥수수를 올려 두니 주방에 달큰한 냄새가 솔솔 퍼졌어요. 막내가 몇 번이나 익었느냐고 물어서 아직이라고 답하다가, 저도 하나 떼어 먹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죠. 장본 것을 정리하기도 전에 간식부터 챙기는 주말. 이런 순서는 늘 계획 밖이에요.
영수증을 접어 식탁 한쪽에 두고 지난주 것과 나란히 보니, 엄청난 변화는 아니어도 제가 느끼는 무게는 달랐어요. 싸게 샀다는 뿌듯함보다 버릴 뻔한 재료가 이번 주 식탁에 먼저 올라간다는 쪽이 더 컸거든요. 돈을 아꼈다는 말은 결과를 다 본 뒤에나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같은 감자를 또 사 오는 일은 없었어요.
학생 때 처음 자취방에서 해 먹은 음식도 갑자기 생각났어요. 작은 냄비에 밥을 하고 달걀 하나만 올렸는데, 바닥은 눌고 달걀은 반쯤 흘러내렸죠. 그래도 내 돈으로 산 쌀을 버리기 아까워 끝까지 긁어 먹었어요. 그때는 냉장고가 비어서 고민이었고 지금은 들어 있는 걸 잊어서 고민이라니, 살림도 참 제멋대로예요.
저녁에는 양배추를 잘게 썰어 볶다가 냉동실에서 나온 밥까지 넣었어요. 아이들 입맛에 맞게 맵지 않게 두고, 어른 몫만 나중에 간을 조금 더했답니다. 지글지글 소리가 나자 식탁 주변으로 발소리가 모였고, 큰 그릇 하나가 생각보다 빨리 비었어요. 이 맛이지 ♡
다음 한 주를 완벽하게 준비한 건 아니에요. 수요일쯤 되면 계획에 없던 메뉴를 찾을지도 모르고, 갑자기 간식이 떨어질 수도 있겠죠. 그래도 일요일 저녁까지 쓸 재료가 눈에 보이게 놓여 있으니 월요일 아침이 조금 덜 복잡해 보여요. 아까 접어 둔 영수증은 옥수수 껍질 밑에 깔려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