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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부터 날린 김치, 우리 집 김치볶음밥 이야기

오늘 저녁은 김치볶음밥이었어요. 아이들 등원시키고 돌아와서 밀린 빨래를 개다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훌쩍 지나 있더라고요. 오전 내내 정신없이 움직였는데 막상 저녁 메뉴는 하나도 안 정해놓은 채였어요. 세탁 바구니 옆에 앉아서 뭐 해 먹지, 하고 멍하니 있던 시간이 꽤 길었어요. 창밖은 벌써 낮이 다 지나가고 있었고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가 유독 시어져 있었어요. 익어도 너무 익어서 그냥 반찬으로 먹기엔 좀 부담스러운 상태였죠. 이럴 때 제일 만만한 게 김치볶음밥이잖아요. 손이 많이 가지 않으면서도 아이들 저녁까지 한 번에 해결되니까요.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꺼내 놓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오늘은 이거다,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 부쩍 살림에서 사고가 잦아요. 며칠 전엔 베란다에 둬둔 양파에서 싹이 올라온 걸 보고 혼자 헛웃음이 났어요 ㅎㅎ. 분명 얼마 전에 사다 놓은 것 같았는데 시간이 그렇게 흘렀더라고요. 살림이라는 게 참, 눈 깜짝할 사이에 뭔가 하나씩 어긋나 있어요. 양파는 결국 싹 부분만 잘라내고 나머지는 그냥 썼어요, 멀쩡했거든요. 이런 식으로 뭔가 하나씩 발견되는 날이 종종 있어요.

전에 늦잠 자고 정신없이 나갔던 날 편의점 도시락 하나로 배를 채웠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요, 그날이랑은 완전히 다른 결의 하루였어요. 그날은 저 혼자 대충 때웠다면, 이날은 온 가족이 다 같이 앉아서 먹은 저녁이었으니까요. 같은 저녁이라도 이렇게 온도 차가 크구나 싶었어요. 부엌에서 나는 냄새 하나로 하루의 결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아요.

다 먹고 나서야 이게 맞았구나 싶었던 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양념은 저희 집 식탁에 꽤 오래 남을 것 같아요. 밥을 볶다가 마지막에 냄새부터 확 퍼지는데, 그 순간 이미 다 먹은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이렇게 만족스러울 줄은 몰랐죠?! 저녁 준비하면서 이런 기분 드는 날이 사실 흔치는 않거든요.

아이들이 먼저 숟가락을 들고 달려온 것도 오랜만이었어요. 매운 걸 잘 못 먹는 막내 몫은 따로 덜어서 마요네즈를 좀 더 넣어 부드럽게 맞췄는데, 그것마저 그릇을 싹 비우더라고요. 저는 그 모습 보는 게 제일 뿌듯해요 :) 밥그릇 긁는 소리가 식탁 여기저기서 들리니까 그것만으로도 오늘 저녁은 성공이다 싶었죠. 평소엔 반찬 투정도 꽤 있는 편인데 이날은 조용했어요. 물 마시러 잠깐 일어난 것 말고는 다들 자리에서 꼼짝을 안 하더라고요.

맛으로 보면 자극적이지도, 밍밍하지도 않은 딱 중간 어디쯤이었어요. 짜지 않으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그 지점을 잘 찾은 느낌이었죠. 밥알 하나하나에 양념이 촵촵 잘 배어 있어서 숟가락으로 뜰 때마다 색이 예뻤어요. 접시에 옮겨 담을 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부터가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위에 살짝 김가루라도 뿌려주면 보기에도 더 그럴듯했을 텐데, 그날은 그냥 그대로 냈어요.

솔직히 이 정도로 괜찮을 줄은 몰랐어요. 김치볶음밥이야 워낙 흔한 메뉴라 특별할 게 있을까 싶었는데, 순서 하나 바꿨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싶더라고요. 마요네즈를 마지막에 살짝 데워 넣는 것도 그렇고요. 늘 하던 대로 대충 볶던 방식이랑 비교하면 확실히 결이 다르더라고요. 같은 재료로 이런 차이가 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동안은 왜 이렇게 안 해봤나 싶기도 했어요.

식은 다음에 다시 데워 먹어봤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오히려 시간이 좀 지나서 양념이 밥에 더 배어든 느낌이었어요. 다음 날 도시락으로 싸 줘도 되겠다 싶었을 정도예요. 아침에 데워서 김하고만 곁들여도 한 끼가 됐어요.

먹고 나서 설거지하면서도 계속 그 냄새가 코에 남아 있었어요. 이 맛이지 ♡ 싶은 순간이었어요. 다음에 또 김치가 시어지면 망설임 없이 이 메뉴로 갈 것 같아요.

냉장고에 있던 것들로 거의 다 됐어요#

재료는 생각보다 단순했어요. 집에 늘 있는 것들로 거의 다 채워지더라고요. 마트까지 따로 나갈 필요 없이 냉장고랑 양념통만 뒤져도 웬만큼 갖춰지는 구성이었어요. 목록을 쭉 적어 놓고 보니 새삼 별거 없다 싶었어요.

  • 기름 5ml
  • 김치 200g
  • 물 200ml
  • 참치액 2큰술
  • 양념·소스: 다진마늘, 고춧가루, 고추장, 마요네즈 (정확한 비율은 원문 레시피에)

문득 학생 때 자취방에서 처음 김치볶음밥을 해 먹었던 기억이 났어요 ㅎㅎ. 그때는 순서고 뭐고 없이 그냥 다 때려 넣고 볶기만 했는데, 그래도 그 나름대로 맛있었던 걸 보면 이 메뉴는 어떻게 해도 크게 어긋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 시절엔 프라이팬 하나로 밥이며 반찬이며 다 해결했었죠. 그때 쓰던 낡은 팬 생각도 잠깐 났어요.

졸이던 순간, 그 냄새가 아직도 나요#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김치를 물에 넣고 졸이던 때였어요. 강불에서 보글보글 끓다가 점점 물기가 잦아들면서 냄새가 확 진해지는데, 그때부터 부엌 전체에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어요. 거실에 있던 아이들도 이 냄새 뭐냐며 부엌을 기웃거릴 정도였어요. 그 냄새만으로 벌써 다들 기대하는 눈치였죠.

양념을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볶는 구간도 기억에 남아요. 고추장이며 참치액이며 넣고 나서 주걱으로 젓는데 색이 점점 짙어지더라고요. 정확한 비율이랑 불 조절 타이밍은 저도 처음엔 감이 안 잡혀서 원문 레시피에 나와 있는 순서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봤어요. 화면이랑 팬을 번갈아 보느라 정신은 없었지만 그 덕에 헤매지는 않았어요. 손에 양념이 튀는 줄도 모르고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이 구간만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한결 수월해져요.

밥을 넣고 마지막에 눌러가며 볶는 순간, 밥알이 노릇노릇해지면서 팬 바닥에 살짝 눌어붙는 소리가 나기 시작해요. 그 소리가 멈추는 순간이 딱 완성!! 타이밍이더라고요. 그 타이밍 놓치면 좀 질척해지니까 저는 그 소리를 기준으로 불을 껐어요. 처음 몇 번은 감을 못 잡아서 조금 질게 됐었는데, 이번엔 소리 하나로 딱 맞췄어요.

영양 성분표를 보다가 든 생각#

다 먹고 나서 문득 이 메뉴의 영양 성분이 궁금해져서 찾아봤어요.

1인분 기준 영양성분 · 가격 (1인분 레시피, recipio 계산)
칼로리577 kcal
탄수화물33.5 g
단백질10.7 g
지방49.7 g
당류8.1 g
나트륨2390 mg
재료비약 4,675원 (1인분 전체)
사 먹으면약 6,078원

표를 보고 나니 마요네즈랑 참치액 비중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이건 좀 아쉬운 부분인데, 참치액이나 고추장처럼 집에 늘 있진 않은 재료들은 막상 사려고 하면 은근히 손이 가요. 동네 마트엔 없어서 주말에 대형마트까지 나가야 했거든요. 자주 해 먹으려면 이 재료값이랑 구하는 수고가 살짝 걸리는 지점이에요. 한 번 사 두면 오래 쓰긴 하는데, 처음 장 보러 나가는 그 발걸음이 은근히 귀찮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 사 두고 나면 다음번엔 훨씬 수월해질 것 같긴 해요. 자주 해 먹을 메뉴라면 미리 채워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 정도면 다음에도 또 해 먹을 만한 메뉴인 것 같아요. 냄새 하나로 온 가족을 부엌으로 불러 모으는 저녁도 흔치 않으니까요. 재료 챙기는 수고만 넘기면 그다음은 다 순조로울 것 같고요. 지금 냉장고엔 얼마나 시어진 김치가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