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여섯 시가 다 되도록 냉장고 문을 세 번은 열었다 닫았어요. 학원 라이딩 끝내고 들어오면 아이들은 배고프다는 말부터 하는데, 그날따라 장 봐 둔 게 마땅치 않더라고요. 국물 있는 게 당기긴 하는데 뭘 끓여야 하나 냉장고 앞에 서서 한참 고민했어요. 이럴 때마다 머릿속으로 메뉴 서너 개를 지웠다 그렸다 하는 게 일이에요. 창밖은 벌써 어둑해지는데 저녁 메뉴 하나 못 정하고 서 있는 제 모습이 스스로도 좀 우스웠어요.
문득 예전 생각이 났어요. 학생 때 처음 자취방 얻고 나서 혼자 해 먹었던 음식이 하필 이거였거든요. 그땐 뚝배기도 없이 그냥 냄비 하나로, 그것도 라면 끓이던 냄비 그대로 대충 끓여 먹었는데, 그 맛이 이상하게 오래 남더라고요. 자취생 시절엔 뭘 해 먹어도 다 맛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초라한 밥상이 그립기도 해요. 좁은 부엌 하나에 냄비 하나, 그릇 두어 개가 살림의 전부였던 시절이었죠.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그 늦잠 잔 날 얘기를 쓰면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충 때웠다고 했었는데, 그날이랑은 완전히 반대로 이번엔 작정하고 부엌에 섰어요. 같은 부엌인데도 어떤 날은 손 하나 까딱하기 싫고 어떤 날은 이상하게 일이 잘 잡혀요.
그래서 고른 게 고깃집에서 파는 것 같은 된장찌개였어요. 예전에 영상으로 스치듯 봤던 레시피가 생각나서 뚝배기부터 꺼냈죠. 마침 뚝배기가 있으니 그 느낌을 흉내라도 내 보자 싶었어요. 앞치마를 두르면서도 반신반의했는데, 일단 해 보자는 마음이 더 컸어요.
이번엔 진짜 다시 만들었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거 또 끓이게 될 것 같아요. 국물 맛이 딱 그 고깃집에서 먹던 느낌이 나서 아이들도 밥을 두 그릇씩 비웠거든요 :) 자주 하는 된장찌개랑은 결이 좀 다르더라고요. 평소엔 슴슴하게 끓이는 편인데 이번 건 확실히 더 진한 축이었어요. 상 치우면서도 다음엔 언제 또 끓일까 벌써 궁리하고 있었어요.
물론 매번 이렇게 끓이진 않을 거예요. 손이 좀 가는 편이라 평일 저녁엔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그래도 주말엔 한 번씩 생각날 맛이었어요. 특별한 날 상차림으로 내놓아도 손색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뭐가 들어가나 봤더니 냉장고에 다 있더라고요
냉장고를 열어 보니 다행히 기본 채소는 다 있더라고요. 양파랑 감자, 대파, 청양고추까지 손질만 하면 되는 상태였어요. 두부도 마침 남아 있어서 따로 장을 보러 안 나가도 됐고요. 도마 위에 재료를 쭉 늘어놓고 나니 그제야 저녁이 좀 될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채소 칸을 뒤적이는 손이 그날따라 유난히 바빴어요.
재료 챙기다가 문득 아까 낮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이웃 생각이 났어요. 장바구니 가득 채소를 들고 계시길래 뭐 만드시나 궁금했는데, 저도 비슷한 걸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사는 게 다 비슷한가 싶어서 혼자 웃었어요 ㅎㅎ. 그 짧은 마주침이 괜히 하루 중에 기억에 남았어요.
양념은 된장이랑 쌈장을 같이 쓰는 게 이 레시피 포인트더라고요. 된장만 넣으면 텁텁하고 쌈장만 넣으면 너무 달큰해지는데, 둘을 섞으니까 그 중간이 딱 나왔어요. 고춧가루도 살짝 넣어서 칼칼한 끝맛을 잡았고요. 양념통을 이것저것 꺼내 놓고 보니 조리대가 금세 어지러워졌어요.
이번에 쓴 재료는 이 정도였어요.
- 양파 0.5개
- 감자 1개
- 대파 0.5대
- 청양고추 2개
- 두부 0.5모
- 식용유 15ml
- 쇠고기 다시다 1큰술
- 물 500ml
- 양념·소스: 된장, 쌈장, 고춧가루 (정확한 비율은 원문 레시피에)
다시다는 원래 잘 안 쓰는 편인데 이 레시피에서는 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반신반의하면서 넣었는데 확실히 국물 감이 달라지긴 했어요. 이런 조미료 하나 차이가 꽤 크구나 싶었죠. 평소에 안 쓰던 걸 새로 쟁여 두는 것도 은근히 귀찮은 일이긴 해요. 찬장 안쪽에서 유통기한 다 된 조미료 통들 사이를 한참 뒤졌어요.
청양고추를 톡톡 썰어 넣으면 아이들 입엔 매울까 봐 반만 덜어서 넣었어요. 그래도 칼칼한 냄새는 그대로 나서 저는 만족스러웠어요. 매운 걸 못 먹는 애들 눈치를 보면서 양을 조절하는 것도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됐어요.
뚝배기 앞에서 있었던 일
된장이랑 쌈장을 기름에 먼저 볶는 과정이 좀 인상 깊었어요. 나무 주걱으로 계속 저으면서 타지 않게 신경 써야 하는데, 잠깐 딴짓하다가 밑이 눌어붙을 뻔했거든요. 순간 심장이 철렁했어요. 장 볶는 냄새가 부엌 전체에 퍼지는 동안은 다른 일은 손에 안 잡히더라고요.
장이 기름에서 촵촵 소리를 내면서 노릇노릇 볶아지는데 그 냄새가 벌써 고깃집 느낌이었어요. 여기서 불 조절을 얼마나 정교하게 해야 눌어붙지 않는지는 원문 레시피에 자세히 나와 있더라고요. 저는 감으로 대충 했는데 다음엔 좀 더 정확히 보고 따라 해야겠다 싶었어요.
물을 붓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편했어요. 손질해 둔 채소를 한꺼번에 넣고 뚝배기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걸 지켜보기만 하면 됐거든요. 그 냄새만으로 이미 반은 완성!! 그 사이에 밥솥 소리도 같이 들려서 부엌이 정신없이 바빴어요.
두부를 작게 썰어 넣었더니 숟가락으로 뜰 때마다 국물이랑 같이 사르르 올라와서 먹기 편했어요. 이건 확실히 잘한 선택이었다 싶었죠. 예전엔 두부를 크게 썰어서 애들이 씹기 불편해했는데 이번엔 그런 불만이 없었어요.
차돌박이를 올리면 훨씬 진해진다는 얘기도 있던데, 이번엔 냉동실에 마침 있는 게 없어서 생략했어요. 다음엔 꼭 넣어 보고 싶어요.
뚝배기를 상에 옮기는 그 짧은 순간에도 김이 폴폴 올라와서 손이 뜨거웠어요. 아이들이 벌써 숟가락을 들고 식탁 앞에 앉아 있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급해지더라고요. 맛있게 먹자 ♡ 하고 뚝배기째 상에 올렸어요.
영양 표 보고 살짝 놀랐던 이유
다 끓이고 나니까 이 국물에 뭐가 얼마나 들어있나 궁금해지더라고요. 매번 대충 먹다가 한 번쯤은 제대로 확인해 보고 싶었거든요.
| 칼로리 | 656 kcal |
|---|---|
| 탄수화물 | 66.2 g |
| 단백질 | 32.7 g |
| 지방 | 30.6 g |
| 당류 | 11.6 g |
| 나트륨 | 4418 mg |
| 재료비 | 약 4,345원 (1인분 전체) |
| 사 먹으면 | 약 9,000원 |
그런데 표를 보고 나니 살짝 걸리는 부분이 있었어요. 저는 두부나 채소는 늘 사 두는 편이라 괜찮았는데, 차돌박이까지 챙기려면 동네 마트보다는 주말에 대형마트를 들러야 하더라고요. 매번 이렇게 챙기긴 좀 번거로울 것 같아요. 냉장고 사정에 따라 만드는 날과 못 만드는 날이 갈릴 것 같은 레시피예요. 평일엔 아무래도 손이 잘 안 갈 것 같고, 미리 계획해 둬야 하는 메뉴에 가까웠어요.
쌈장이랑 다시다도 집에 없으면 따로 사야 하는 재료라, 이것저것 다 채우려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편이었어요. 이 부분은 살짝 아쉬웠어요. 냉장고에 늘 있는 재료로만 끝나는 레시피는 아니더라고요.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다 보면 생각보다 지출이 늘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도 사 먹는 값이랑 비교해 보니 집에서 끓이는 게 훨씬 남는 장사이긴 했어요. 재료비를 아예 안 따질 순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은 해 볼 만하다는 계산이 서더라고요.
그래도 아이들이 국물까지 싹싹 긁어 먹는 걸 보니까 이 맛이지 ♡ 싶더라고요. 막내는 밥을 국에 말아서 한 그릇 뚝딱 비웠어요. 그 모습 보는 재미로 또 끓이게 되는 거겠죠.
저녁 한 끼로는 확실히 만족스러웠어요. 다음엔 재료를 미리 좀 챙겨 뒀다가 더 여유 있게 끓여 보려고요. 뚝배기 씻으면서도 오늘 저녁은 그럭저럭 잘 넘겼다 싶어서 마음이 놓였어요.
고깃집 맛을 집에서 낼 때 다들 뭘 제일 챙기시나요? 저는 이번에 다시다 하나로 많이 배웠는데, 다른 비법이 있으면 궁금하네요. 다음엔 어떤 메뉴로 또 이런 시행착오를 겪게 될지 저도 궁금해요.